한국 연극과 방송계의 살아있는 전설, 이순재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25일 새벽, 오랜 연기 인생을 마감하고 유족들 곁을 떠났다. 함경북도 회령 출생의 이순재는 4살에 서울로 내려와 해방과 한국전쟁을 경험하며 성장했다.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한 후 영화 '햄릿'을 보고 배우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그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첫 데뷔를 하여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순재는 '나도 인간이 되련다',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삼김시대',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등 14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국내 연기계의 산 역사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사랑이 뭐길래'에서 연기한 '대발이 아버지' 캐릭터로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와 공감대를 형성, 시청률 65%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사극에서도 그의 명연기는 빛을 발했으며, '허준', '상도', '이산' 등을 통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에 이름을 남겼다.
70대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연기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코믹한 연기로 새로운 매력을 발산했고, '야동 순재'라는 새로운 캐릭터로 어린이 팬들까지 사로잡았다.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는 체력과 열정을 과시하며 '직진 순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순재는 연극 무대로 돌아와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리어왕' 등에서 열연을 펼치며, '리어왕'에서는 200분에 달하는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찬사를 받았다. 2023년에는 연출자로 변신하여 체호프의 '갈매기'를 후배들과 대극장에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는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순재는 연기뿐만 아니라 정치 활동에도 참여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민주자유당)으로 당선되어 국회의원 활동을 했고, 학생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연기에 대한 지식과 열정을 후세에 전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