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둔화와 AI·전기차·반도체 중심의 산업 대전환 속에서, 국내 4대 그룹인 삼성·SK·LG·현대차가 예년보다 한 달가량 앞당긴 11월 초부터 연말 인사에 착수하며 내년도 경영 체제 재정비에 나섰다. 

삼성, 사법리스크 해소 후 ‘뉴 삼성’ 가속... 세대교체·AI 조직 부상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털어낸 이후 처음 단행한 조직 개편을 통해 ‘뉴삼성’의 새 판짜기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 7일 기존 ‘사업지원TF’를 ‘사업지원실’로 확대·개편하고, 박학규 사장을 신임 사업지원실장에 임명했다. 그룹의 2인자로 불리던 정현호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사업지원실은 전략팀·경영진단팀·피플팀·M&A팀 등 4개 조직으로 구성됐다. 전략팀은 최윤호 사장, 경영진단팀은 주창훈 부사장, 피플팀은 문희동 부사장이 각각 맡았으며, M&A팀은 안중현 사장이 이끈다

재계에서는 이르면 다음 주 발표될 사장단 인사에서 전영현 DS부문장 부회장의 역할 조정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한다. 전 부회장은 현재 DS부문장, 메모리사업부장, SAIT 원장 등 세 직책을 겸하고 있어 일부 보직을 후배 경영진에게 이양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또한 노태문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무대행(사장)의 부회장 승진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사내 최연소 승진을 이어 온 노 사장이 8개월 만에 직무대행을 떼고 부회장으로 승진할 지 여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AI 중심의 미래 사업 전환에 속도를 내고, 젊은 경영진 중심의 세대교체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지원실의 격상 역시 이러한 방향성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SK그룹, ‘젊은 현장형 리더’ 전면 배치... AI 대전환 대응 본격화

4대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인사를 단행한 곳은 SK그룹이다. SK그룹은 지난달 30일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며 연말 인사 시즌의 포문을 열었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SK그룹에서 부회장 승진자가 나온 것은 2021년 이후 4년 만이다. 이번 인사에서는 11명의 사장 승진자 중 절반 가까운 5명이 1970년대생으로, 역대 가장 젊은 사장단 진용이 꾸려졌다.

SK그룹은  ‘젊은 현장형 리더’를 전면 배치함으로써 급변하는 미래의 변화를 대비할다는 방침이다. 

SK㈜에서는 강동수 PM부문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그룹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총괄하게 됐으며, SK텔레콤은 정재헌 대외협력담당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해 컴플라이언스와 고객 신뢰 강화에 나섰다.

SK온은 이용욱 SK실트론 대표를 사장으로 승진시켜 배터리 사업의 체질 개선을 이어간다. SKC는 김종우 대표, SK에코플랜트는 김영식 SK하이닉스 양산총괄, SK머티리얼즈 CIC는 송창록 대표를 각각 사장으로 임명했다.

특히 최근에는 1980년생인 류병훈 SK하이닉스 미래전략 담당이 회장 비서실장에 발탁되며 세대교체 흐름이 더욱 뚜렷해졌다.

한편, SK그룹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CEO 세미나를 열고 ‘운영효율 개선(O/I)’과 ‘AI 전환’을 내년 경영 키워드로 제시했다. 이번 세미나에는 정재헌 SK텔레콤 대표이사를 비롯한 신임 사장단이 참석해 AI 시대 주도권 확보를 위한 그룹의 경쟁력 강화와 비즈니스 전환 방향을 논의했다.

LG그룹, 부회장단 재편 가시화... 변화와 쇄신에 무게

LG그룹도 삼성과 SK의 조기 인사 흐름에 발맞춰 이달 중순 사장단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통상 12월 초에 발표하던 인사 시기를 앞당기며, 변화와 쇄신 기조를 강화할 전망이다.

이번 LG그룹의 인사에서는 부회장단 재편 또는 확대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현재 LG그룹 부회장단은 권봉석(LG), 신학철(LG화학) 부회장 2인 체제다. 신학철 부회장의 용퇴설이 재계 안팎에서 거론되는 가운데, 조주완 LG전자 사장과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이 부회장 승진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또한 문혁수 LG이노텍 대표(부사장)의 사장 승진 여부도 주목된다. 문 부사장은 로봇·모빌리티·차량용 반도체 등 신성장 사업을 중심으로 LG이노텍의 미래 포트폴리오 확대를 이끌고 있다.

제계에서는 LG는 올해 인사에서 ‘안정보다 변화’를 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한다.

구광모 회장이 “지금이 미래를 위한 변화와 혁신의 골든타임”이라 강조한 만큼, 컴플라이언스 경영과 신성장 동력 강화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LG생활건강에 글로벌 화장품 기업 출신인 이선주 사장을 선임한 것도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으로 평가된다.

현대차그룹, ‘안정 속 혁신’ 기조... 보완형 인사 관측

현대차그룹은 이르면 11월 중순~말 사이 사장단 인사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15일보다 1~2주 늦은 일정이다.

그룹 안팎에서는 ‘보완형 인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지난해 정의선 회장 체제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인사가 이뤄진 데다, 최근 미국 관세 정책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정적인 경영 체제 유지가 우선될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파격적으로 발탁된 성 김 전략기획담당 사장과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두 외국인 사장은 각각 미국 내 관세 대응 및 현지 판매 강화 성과를 인정받아 연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또한 장재훈 현대차 부회장의 유임이 유력하며, 자율주행 등 미래차 연구개발(R&D) 조직인 AVP본부를 이끄는 송창현 사장의 연임 가능성도 점쳐진다. 

기아도 송호성 사장과 최준영 사장이 연임돼 조직 안정화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대미 관세 ‘짐’을 던 현대자동차그룹이 사장단 인사를 통해 조직을 재정비할 것으로 보인다”며 “관세 위기를 추스르고 글로벌 완성차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직을 크게 흔들지는 않으면서 ‘안정 속 혁신’을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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