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가 보유 자사주를 대거 소각을 결정하며 유례없는 ‘주주환원’ 이정표를 세웠다. 특히 이번 결정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자신의 낮은 지분율을 보완할 수 있는 강력한 ‘경영권 방어 수단’을 스스로 내려놓았다는 점에서 '용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SK㈜는 10일 이사회를 열고 보유 중인 자사주 약 1,798만 주 중 임직원 보상용을 제외한 1,469만 주(발행주식 총수의 약 20%)를 소각하기로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약 5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규모다. 이는 국내 지주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사주 소각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소각을 최태원 회장의 ‘용단’으로 해석한다. 그동안 SK㈜는 국내 주요 기업 중 자사주 비율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였다. 자사주는 평소 의결권이 없지만, 경영권 분쟁 시 우호적인 제3자(백기사)에게 매각하면 의결권이 되살아나 대주주의 방어막 역할을 한다.
실제로 SK는 지난 2003년 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Sovereign)의 경영권 탈취 시도 당시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넘기며 경영권을 지켜낸 바 있다. 최 회장의 개인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에서 자사주는 사실상 마지막 방어선 역할을 할 무기와 같았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이번 소각을 통해 이러한 잠재적 방어 수단을 영구히 제거하고 주식 가치를 높이는 길을 택했다. 더구나 개정 상법상 자사주 처분 시한이 2027년 9월 까지임에도 SK는 내년 1월 초까지 소각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소각으로 주당순이익(EPS)과 주당순자산가치(BPS)가 크게 상승하며 그동안 저평가되었던 SK㈜의 기업 가치가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21년 SK 그룹의 지주회사는 주주총회 당시 투자형 지주회사를 지향하면서 목표 주가를 200만 원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번 결단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및 주주가치 제고 정책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겠다는 최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이익을 주주와 실질적으로 나누겠다는 ‘정공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간 한국 기업들은 지배구조의 불투명성과 미흡한 주주환원으로 인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특히 자사주는 지배 주주 일가의 입장에서는 경영권 방어 외에도 인수합병시 인수 대금 대용으로 활용 등 '자사주 마법'이라는 표현처럼다목적 용도가 있음에도 최 회장은 적당한 타협 대신 ‘신뢰 회복이라는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최 회장은 그동안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배구조 투명성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이번 결정 역시 대주주 일가나 개별 기업의 이익보다 시장의 신뢰와 주주가치를 우선시 했다는 차원에서 한국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모범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