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부터 '암사역' 제치고 갑자기 검색어 1위에 올라온 신유용, "어떻게 이런일이"...네티즌 공분!

손헌철 기자 | 기사입력 2019/01/14 [11:21]

이른 새벽부터 '암사역' 제치고 갑자기 검색어 1위에 올라온 신유용, "어떻게 이런일이"...네티즌 공분!

손헌철 기자 | 입력 : 2019/01/14 [11:21]

▲     © 손헌철 기자



14일 새벽 서울 '암사동'에서 벌어졌던 10대 흉기난동 칼부림 사건에 관심이 쏠려 있던중 오전 6시경 '신유용'이란 단어가 포털사이트 네이버 실시간 이슈 검색어에 갑자기 1위에 올라 네티즌들의 관심이 쏟아자고 있다.

이날 새벽 전날 오후 7시께 지하철 암사역 3번 출구 앞 인도에서 벌어졌던 10대들의 흉기난동 사건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며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암사역'을 제치고 검색어 1위에 '신유영'이 올라온 것에 대해 영문을 모르던 수많은 사람들이'신유영'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며 '신유영'이 사람 이름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미가 있는지 궁금증이 쏟아지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지만 내막은 한겨레 신문의 단독 보도에 있었다.

한겨레 신문은 고등학생 시절인 2011년 유도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신유용(24)씨와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을 담은 기사를 보도했다.

14일 한겨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5살때부터 유도를 시작했다는 신유영(24)씨는 자신의 실명을 공개해 달라고 했다.

초등학교 때 전라북도 대회에서 입상하는 등 재능을 보이자 고창 영선중에서 그를 스카우트했다. 그 학교에서 문제의 A 코치를 만났다.

A코치는 영선고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힐 정도로 실력이 좋았던 신유영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여러가지 몹쓸짓을 저질렀다. "시합에서 일부러 져라"는 주문도 많았고 그때 마다 시키는 대로 할수 밖에 없었다.

A코치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신유영이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1년 급기야 성폭행까지 저지르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행태까지 보였다.

이후 A코치의 성폭행은 2015년까지 수십여 차례 계속됐고 유영씨는 A코치의 협박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유영씨가 고1때 "생리 했냐"고 물었고 "아직 하지 안았다"고 하자 임신테스트기를 주면서 임신 여부를 테스트 하기까지 했고 산부인과로 데려가 초음파 검사를 하도록 했다.

이후 같은 유도계에 있던 부인이 지인에게 신유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A코치를 의심하게 되자 돈으로 무마하려 했다.

신유용은 A코치가 진정 어린 사과 대신 돈으로 회유하는 모습을 보고 고소하기로 결심하고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신유용의 피해를 증언해줄 증인을 요구했다. 신유용은 자신이 피해 사실을 알렸던 유도부 동료 1명과 여성 코치 1명에게 증언을 부탁했다. 하지만 여성 코치는 유도계와의 친분을 거론하며 거절했고, 증언을 해주겠다고 했던 동료는 경찰 출석 하루 전날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수사는 지지부진해졌다. 사건은 경찰에서 전주지검으로 넘어갔다. 전주지검은 사건 수사를 서울중앙지검에 촉탁했다. 하지만 수사 촉탁 뒤 두달이 넘도록 수사에 별 진척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결과 현재는 삭제됐지만 지난해 11월 신유용씨는 SNS를 통해 고등학교 1학년, 만 16세에 자신을 지도하던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이어 수년간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학 새내기 생활을 시작한 지난해 3월에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와 아내가 알게 됐으니 사실이 아니라고 얘기해 달라는 요구를 받아 너무나도 뻔뻔한 태도에 화가 나 고소를 진행하게 됐다고 알렸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해서 코치와 함께 갔던 산부인과 진료내역서와 ‘돈을 줄테니 용서해 달라’는 문자를 첨부했지만 아직까지 지지부진하게 끌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끝으로 ‘나를 변호하던 변호사는 내 사건이 대표적인 #그루밍성범죄 라고 했다. 댓글로 그루밍성범죄에 관련된 기사를 첨부하겠다. 나는 이 사건의 공론화를 통해 또 다른 신유용이 나오질 않기를 바란다.’면서 ‘#metoo #withyou #공론화’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당시 이 내용을 다룬 보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심석희 선수의 일처럼 크게 공론화가 되지는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