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부재'…쿠팡 김범석의 사과가 남긴 뒷맛
사과에도 필요한 '기술', 드러난 커뮤니케이션 역량
지난 27일 쿠팡 김범석 의장이 결국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을 통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기보다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사과의 진정성이나 ‘사과의 기술' 측면에서 볼 때 김 의장의 발언은 진정성이라는 핵심 요소를 놓친 전형적인 '자기방어형 메시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SK 최태원 회장과 김범석 의장의 사과
사과의 진정성은 형식과 태도에서 절반이 결정된다. 우리는 지난해 5월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SK텔레콤의 해킹 사고 당시 보도자료 뒤에 숨지 않고 공식 기자회견장에 직접 섰던 모습을 기억한다. 당시 최 회장은 카메라 앞에서 직접 허리를 굽혀 사과하며 상황의 엄중함을 몸소 보여주었다. 비판의 화살을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리더의 '책임감'이 전달된 순간이었다.
반면, 김범석 의장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컨퍼런스 콜’이라는 형식을 빌렸다. 수치와 데이터가 오가는 차가운 비즈니스의 장에서 던져진 사과는 피해를 본 고객이나 파트너를 향한 위로라기보다 주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리스크 관리용 멘트'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사태 초기부터 버티기로 일관하고 비난을 불러온 피해 보상안과 미국 정치권 로비를 통한 한국에 대한 압박 등으로 대중의 분노를 산 이후라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사과인가, 자화자찬인가?
특히 눈살을 찌푸리게 한 대목은 사과의 본질을 흐리는 '성과 강조'다.
김 의장은 "지난 분기는 쿠팡과 고객 모두에게 도전적인 시기였지만, 우리 팀이 보여준 대응이 매우 자랑스럽다. 그들은 시스템을 강화하는 동시에 오직 고객을 섬기는 데 집중하며 데이터 사고를 수습했다"고 말했다.
사과의 기술에서 절대 금기시되는 것은 ‘…했다면’이나 '하지만(But)'의 논리와 '자랑'이다. "…했다면 미안하다”식의 사과나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결과적으로 잘했다"는 식의 화법은 사과의 목적을 '잘못의 시인'이 아닌 '정당성의 확보'로 변질시킨다.
사고를 수습한 팀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은 사내 게시판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불편을 겪은 고객들 앞에서 "우리 대응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공감 능력의 결여를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수습을 잘했다'는 평가는 제3자의 몫이지 당사자의 몫은 아닌 것이다. 이런 점에서 쿠팡의 홍보 등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부서는 과연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다.
마무리 선언'이 아닌 '신뢰의 시작'이어야
쿠팡은 그간 한국 시장의 유통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정된 여러 갈등과 사고에 대해 김 의장과 쿠팡이 보여온 태도는 고객이 느끼는 ‘편리함’ 이라는 방패 뒤에 숨는 모습이었다.
이번 김 의장의 발언은 진정한 사과라기보다 "이 정도면 됐지?"라는 식의 '사건 종료 선언'처럼 들린다. 진정한 사과는 마침표가 아니다. 상대방의 화가 풀릴 때까지 이어지는 긴 대화의 시작이다.
쿠팡이 고객의 편리함은 얻었을지언정 대중의 신뢰라는 더 큰 가치를 얻으려면, '자랑스러운 팀'의 성과보다 '상처받은 고객'의 마음을 먼저 읽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