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 말은 그 어떤 시대보다 암흑기였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열강과 천대하던 일본에 강제로 침탈당하고 모욕까지 당했던 시기였다. 권력과 힘을 가지지 못 한 민생은 그런 것들을 동시에 갖고 있던 일본과 미국 편에 붙어 자신의 이권을 위해 그들을 저울질 하고 있었고, 더 큰 권력과 돈을 갖기로 했던 양반들은 나라를 통째로 팔아넘기기 급급했다. 
 
일국의 황후가 일본의 낭인들로부터 시해 당했고, 황제라고 칭한 임금은 그런 일본이 두려워 러시아 공사로 즉시 몸을 피신하는 지독한 가벼운 면모를 보여 밖으로는 백성들을 실망케 했고, 안으로는 신하들로부터 망신을 샀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세계관이다. 구한 말 개화기 물결 한 가운데 놓은 주인공 유진초이(이병헌)와 고애신(김태리), 구동매(유연석), 쿠도 히나(김민정), 김희성(변요한) 이 청춘남녀는 낭만을 가장한 시대가 만든 비극을 각자가 처한 운명으로 개척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를 시청한 일부 시청자는 “역사 왜곡이다”고 주장하고 있고, 또 다른 일부 시청자들은 “저런 시대상황이라면 누구나 친일을 했을 것이다”고 주장하면서 각자의 시선으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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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지 만은 그렇다고 슬프지 만도 않은 그들의 운명

유진초이와 고애신, 구동매, 쿠도 히나, 김희성은 양반과 상놈이 섞여 살면 안 되는 시대에 태어났다. 이들 중 고애신과 그녀의 정혼자 김희성을 제외한 유진초이 등 세 명은 신분 피라미드 최하층에 속하는 노비와 백정, 소작농의 후손이다.
 
종의 이름답지 않게 꽤나 의미 있는 이름을 갖고 있는 주인공 유진초이의 원래 신분은 노비다. 가난하고 신분의 한계는 있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는 부모가 있어 외롭지 않았던 유진은 그러나 부모가 눈앞에서 양반과 그들에 동조된 같은 처지의 노비들에 의해 풍비박산이 난다.
 
자신을 죽어도 아들을 살리고자 했던 유진의 모친은 유진에게 멀리 도망치라고 소리 지르며 죽었고, 어린 유진은 추노꾼들에게 쫓기면서 생활하던 중 도공 황은산(김갑수)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가는데 성공했다. 그곳에서 유진은 부랑아로 살다가 군인이 되면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동양인 최초 미국 해병대 장교가 된 유진은 멋진 제복과 뱃지를 달고 조국인 조선으로 귀향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조선은 열강과 일본 사이에서 겨우 버티는 힘없는 나라에 불과했고, 자신이 조선의 운명을 쥐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 씨 문중의 귀한 애기씨 고애신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은 나라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당찬 여성이다. 모던걸의 사상을 가지고 보수적인 옷을 입고 있는 고애신은 본능적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삶을 다한 부모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 하다.
규방에 앉아 자수를 놓고 서책을 읽는 것보다 총을 잡고 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신분의 고하보다 인간 자체가 존귀하다고 믿는 고애신은 외부세력이 몰고 온 것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며, 그것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비천한 백정의 자손인 구동매는 자신을 천대한 조국보다 자신을 받아들인 일본에 더 우호적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친일의 행적이라기보다는 비참했던 기억에 대한 보상, 조국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에 더 가깝다.
 
백정인 구동매의 가족은 같은 계급은 양반가 가노들에게마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가 미색이 곱다는 이유만으로 짐승처럼 양반에게 희롱당할 때 아무도 그것을 말리는 이가 없었고, 오히려 그것이 백정 여자에게는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자신이 백정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님에도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 한 구동매는 조선을 버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자신이 가진 환경을 뛰어넘어볼 결심을 하게 되고, 마침내 그것이 통했다. 그는 자신과 다른 듯 같은 처지에 있는 쿠도 히나와 성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며 조국의 뒷방에서 분노와 울음을 삼켜야만 했던 지난날을 위로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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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작농의 후손으로 태어난 쿠도 히나는 일찍이 영악한 아버지 이완익(김의성) 덕에 경성에서 제일 잘 나가는 호텔 글로리의 여주인으로 거칠 것이 없다. 세상 그 어느 것도 부러울 것 없고, 빛나는 쿠노 히나는 그러나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눈물과 분노를 소리 소문 없이 삼켜야만 했던 어두운 과거를 지니고 있다.

아버지뻘 일본 남자의 아내로 팔린 그녀는 울기보다는 물기를 택했고, 두려움 대신 분노하는 법을 배웠다. 마치 그녀는 어디를 물어야 상대가 즉사할 수 있나, 라고 보는 것처럼 은밀한 눈빛으로 유진초이와 고애신의 약점을 조용히 파악하려고 한다. 
 
남편의 죽음은 히나에게는 행운으로 돌아왔다. 거부였던 일본인 남편은 그녀를 위해 호텔 글로리를 선물처럼 남기고 갔고, 부유한 미망인이 된 히나는 경성 최고 호텔의 여주인, 최고로 아름다운 미망인 등의 수식으로 경성 남성들의 마음까지 흔들어놓고 있다.
 
그런 히나가 관심을 보이는 상대는 유진 초이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 삶이 성공을 거두어들였던 만큼 이번에는 유진초이를 자신의 두 번째 남자로 만들어 성공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김희성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외동아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으로 유학 간 김희성은 공부보다는 도박과 여자, 술을 즐기는 것으로 젊은 인생을 낭비하다시피 하고 있다. 집에서 귀국을 하라고 독촉하는 연통을 보내도 꿈쩍하지 않고 있던 그는 갑자기 일본에서의 생활이 재미가 없다는 듯 돌연 조선으로 귀국하고 만다. 그런 그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정혼녀 고애신의 집이다. 당찬 아름다움과 고귀한 기품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고애신을 본 김희성은 한 눈에 그녀에게 반하고 말지만, 고애신은 전형적인 부잣집 도련님에게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 고애신의 마음을 간파라고 한 듯 김희성은 정혼은 당분간 미루고, 동무로 지내보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김희성은 아마 사회주의 운동을 하고 있거나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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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표 첫 사극은 ‘역사왜곡’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드라마 ‘파리의 연인’, ‘태양의 후예’, ‘도깨비’ 등 로맨틱 코미디의 대모로까지 불리우고 있는 김은숙 작가의 첫 사극이라는 점에서 방영 전부터 김은숙을 좋아하는 팬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게다가 명품 연기를 선보이면서 명실상부 대한민국 탑배우로 늘 거론되고 있는 이병헌과 김은숙 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조우진, 김병철 등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출연확정 짓자마자 더 큰 기대를 모았다.
 
현재까지도 ‘도깨비’ 열풍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스터 션샤인’은 ‘도깨비’와 같은 명맥을 유지하거나 아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상당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직까지는 ‘도깨비’ 이상의 수익이나 열풍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역사왜곡 드라마’임을 강조하고 나서고 있다. 구한말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역사관이 확립돼 있지 않은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조선 출신 흑룡회 두령을 주연급 조연으로 내세웠다는 점 등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주된 이유다.
 
5만원의 돈을 받고 조국을 팔아넘겨 친일의 실세가 된 이완익의 행동, ‘늙은 여우 죽이기’ 프로젝트를 실행한 일본의 야쿠자 흑룡회의 등장이 찜찜한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다른 일부 시청자들은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주는 것이 맞다”, “그 시대 친일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당장 구동매나 쿠도 히나만을 보더라도 나라에 대한 원한을 가지면 친일의 행동이 당연한 것 아니냐” 등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 드라마는 역사 드라마가 아니다. 당장 주인공들만 보더라도 가상의 인물과 상황을 내세웠을 뿐이다. 작가 김은숙은 이 드라마로 하여금 자신의 역사관이나 정치색을 전혀 가미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인물들 간 내면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며, 현실보다는 가상과 환상을 현실감 있게 끌어내고 있을 뿐이다.
 
한편, 지난 22일 방영된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고애신에 대한 묘한 감정을 고애신에게 서서히 전달하고 있는 유진초이에게 조선의 운명을 쥘 수 있는 키가 주어지게 되고, 유진과 구동매, 김희성 세 남자는 술자리를 통해 서로의 인연과 과거를 알기 시작하게 된다. 과연 유진과 고애신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조선과 어떤 연결을 시킬 것인지 사뭇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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