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걷기... 출퇴근길을 ‘순례’로 만들다

김건우 | 기사입력 2020/10/30 [10:26]

코로나 시대의 걷기... 출퇴근길을 ‘순례’로 만들다

김건우 | 입력 : 2020/10/30 [10:26]
[뉴스브라이트=김건우]

▲     © 김건우



회사생활 11년차 직장인이 사무실 동료와 점심을 먹고 있다. 빠듯한 1시간을 쪼개 즉석떡볶이를 볶다가 스치듯 내뱉는다. “다음 책은 걷기에 대해서 쓸까 봐요. 입사 전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온 지도 12년이 다 됐네요. 다시금 가서 걸어보고도 싶은데 한 달 시간 내기가 만만찮으니까요. 뭐, 밥벌이하는 사람의 숙명 아니겠어요?”
 
시간에 쫓기며 후다닥 떡볶이를 해치우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문득 겁이 났다. ‘이제 이게 숙명이구나. 산티아고에 다시 가는 날을 꿈꾸며 언젠가 시간이 나기만을 기다리는 삶.’ 쓸쓸해졌다. 12년 전, 24세 청년는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궁금한 마음도 생겼다. 퇴근 후, 그때 기록을 펼쳤다.
 
첫걸음을 내디뎠다. 여기서 나는 비전을 얻어가고자 한다. (...)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 마음을 직업으로도 실현하고 싶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할 것이다.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야 한다. - 2008.3.16. 9:50, 론세스바예스
 
2008년, 혈기 넘치는 젊은이는 물었다. ‘내가 누구인지, 세계는 내게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노트를 덮고나니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해졌다. 용기를 냈다. ‘스페인에 못 간다면 지금, 여기를 산티아고로 만들 수도 있잖아? 항상 떠오르는 태양처럼 매일 다니는 길을 산티아고라 생각하면 되잖아?’
 
저자는 다음 날부터 왕복 20km를 걸어서 출퇴근한다. 하루 3만보를 걷는다고 치면, 산티아고길과 같은 거리를 걷기까지 40일은 필요했다. 매일 만보계를 차고 걸음수를 측정하며 자신의 시도를 ‘일상이 산티아고’라 이름 붙였다. 2월 중순에 시작된 원맨 프로젝트 ‘일상이 산티아고’는 결국 4월 초가 돼서야 끝난다. 모두 49일이 걸렸다.
저자는 매일 아침 걸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에 몸을 맡겼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이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며 꺼낸다면 딱한 눈빛으로 쳐다볼 법한 질문이었다. 새벽 출근길에 품은 의문은 회사로 들어오며 접어뒀다. 대신 거친 생각을 글로 토해냈다.
 
산티아고를 다시 걷는다고 답이 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기서 찾을 수 없다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므로 떠남을 거부하겠다. (...)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살아숨쉬는 만큼 걸으면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진리가 무엇인지 지금, 여기 걸으며 찾아보겠다. 죽음과 걸음, 이것이 나의 본질이다. (13p)
 
지금까지 180km쯤 걸었다. 걷기가 일상이 되고 있다. 회사에서 누가 물었다. 왜 걷느냐고. 나는 진보하는 느낌이 좋다. 진보(進步)는 나아갈 진과 걸음 보를 쓴다. 걸으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러닝머신 위에서는 나아갈 수 없다. 걸어도 제자리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올지언정, 돌고 도는 시행착오를 마다하지 않겠다. (36p)
 
곁가지를 쳐내다보면 내 몸을 쓰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걷겠다. 걸어서 세상을 주유(周遊)하겠다. 걸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겠다. 걸으면서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구경하겠다. 그래, 걸으며 놀겠다. 노는 삶이 자연스럽다. 일하라고 태어난 세상이 아니다. 그래도 일해야 한다면, 내 노동을 놀이로 만들어보겠다. (65p)
 
걸으면서 재난이 닥치면 나는 어떻게 할까 떠올렸다. 허약한 영혼이 의지하던 모든 소유가 사라진다면. 하지만 의식이 살아 있다면. 우선 맨몸으로라도 걸을 것이다. 벌거벗은 몸뚱아리로 할 수 있는 행동부터 찾겠다. 나는 걸을 수 있고, 나는 생각할 수 있다. 움직임에 내 존재 이유가 있고, 사유에 내 존재 의미가 있다. (105p)
 
이 책은 저자가 2008년에 기록한 한 달간의 단상을 가져와 하루하루 비교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저자는 고백한다. “강산이 변할만큼 시간이 흘렀건만 부끄럽게도 내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그게 본질이라면 이제 자신을 받아들여야겠다”고. 따라서 <일상이 산티아고>는 ‘내가 나를 감싸안으려는 몸부림의 기록’이다.
 
<일상이 산티아고>는 꼭 스페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딛고선 자리와 자신이 숨쉬는 순간을 사랑하려 애쓰니 지금, 여기도 산티아고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내디딘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아있음을 깨닫는 여정이었다고 말이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과 평범함의 위대함을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이참에 매일매일 다니는 출퇴근길을 나만의 순례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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